Steep에세이 · 사유의 초상

경계를 걷는 사람: 풀리지 않는 것을 품는 일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명확히 생각하라는 조언은 대개 선택을 요구한다. 결정하고, 약속하고, 앞으로 가는 것. 경계를 걷는 사람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많은 것이 서 있지 말라는 자리에 산다는 것을 안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가 모두 참이고 어느 쪽도 물러나지 않는 자리다.

거기 남는 것은 의식적인 실천이다. 모호함을 해결하고 싶을 때 다른 질문이 생긴다. 이것은 문제인가, 대상 자체의 모양인가. 사랑하지만 상처를 준 할머니. 먹여 살리면서 소진시키는 일.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나라. 하나의 판결은 모두를 왜곡할 수 있다.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이 사람도 결정한다. 다만 긴장을 먼저 없애지 않는다. ‘둘 다 참이지만 이 일을 한다’는 ‘다른 쪽은 애초에 참이 아니므로 한다’와 다르다. 둘째는 길을 쉽게 한다. 첫째는 더 정직할 수 있다.

일상에서

책이나 영화, 동료에게 ‘그래서 좋아, 싫어?’는 충분하지 않다. 애정과 결함은 함께 있다. 단순화가 언제나 명료함은 아니다. 때로 진실을 바꾼다.

빠르고 날카로운 평가는 거리를 부른다. 반드시 틀려서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면을 펴는 동안 무언가 사라져서다.

이메일에 시간이 더 든다. 친구는 입장을 정했고 이 사람은 아직 둘을 품는다. 글에 단서가 늘어난다. 어떤 독자는 짜증을, 어떤 독자는 정직함을 느낀다.

칸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끌린다. 하나의 보수적 신념을 가진 진보주의자,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학자, 의학을 공부한 사제. 긴장은 공연이 아니다. 중요한 모서리를 갈아내지 않은 삶의 표지다.

겉의 주제를 두고 벌어지는 게 아닌 다툼도 보인다. 표면에는 승자가 생겨도 진전은 없다. 깊은 것을 이름 붙이면 대화가 달라지거나 ‘피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다. 피하는 것은 거짓 양자택일뿐일지 모른다.

그늘

긴장은 숨는 곳이 될 수 있다.

두 입장이 늘 똑같이 참은 아니다. 한쪽이 훨씬 더 참일 수 있다. 모순을 지키는 반사가 ‘이번에는 주로 이쪽’이라는 정직한 말을 막는다. 실천이 실천하는 사람을 붙잡는다.

복잡함을 연기할 수도 있다. ‘복잡한 일이야’는 사실이 아니어도 현명하게 들린다. 구체적인 긴장을 이름 붙일 수 있는가, 막연히 가리킬 뿐인가에 차이가 있다.

세 번째 그늘은 천천히 온다. 약속에 대한 알레르기다. 열린 질문이 쌓여 열어 두는 비용이 답하는 비용보다 커진다. 첫 달의 ‘아직 모르겠다’는 강하다. 삼 년째에는 삶이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떠오르는 사람들

월트 휘트먼은 자신 안의 다수와 모순을 썼다. Leaves of Grass는 긴장을 해결하지 않고 모은다.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은 쉽게 한편을 들지 않는다. 인물들은 흥미롭게 틀리며 모든 것이 벌과 보상이 되지 않는다. 양립하지 않는 믿음과 살아간다.

제이디 스미스는 맞지 않아 보이는 입장을 함께 둔다. 소설가가 소설의 한계를, 비평가가 비평의 외로움을 쓴다. Feel Free에서 또렷하다.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의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고집했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의 무게를 덜지 않았다.

로버트 카로는 수십 년 린든 존슨을 쓰면서 영웅이나 악인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한 장이 판결을 부를 때도 전기는 양끝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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